미국 살며 했던 알바들
안녕하세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저희 가족 들은 핑크빛 희망을 가지고 미국으로 넘어왔었습니다만, 바로 연달아 사기 두 번 당하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민을 위해 가져온 돈 싹 다 날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사연은 제 다른 포스트 참조). 급격하게 삶의 질은 낮아졌고 가족 모두 생계를 걱정하며 뭐가 됐든 간에 경제활동에 매달려야 했죠. 물론 저와 제 동생도 예외는 아녔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제 동생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알바들을 하며 버텨왔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후에 혹시 유학 오시는 분이나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할 수 있는 게 사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생 때는 Seiko에서 나온 에어프로라는 시계가 너무 사고 싶어서 주유소와 바이 더 웨이(?)라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어디서 뭘 해야 할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젤 먼저 할 수 있었던 게 아버지 하는 일 돕기!
1. 노가다
저희 아버지는 건축업 (이라고 쓰고 노가다 성격의 일)에 종사하셨습니다. 할 수밖에 없었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가장 원초적이지만 몸과 힘을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저는 출석은 채워야 하니 방학이 시작하면 아버지를 도우러 나가고 소량의 용돈(임금)을 받았었습니다. 정말 소량... 제대로 된 노가다는 대학교 때 하게 되는데 다시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이때는 주로 나가면 땅 파는일, 기계 나르기, 뭐 잡고 있기, 자재들 내리기 등등 아예 기술 필요 없는 일들 위주로 했었어요.
2. 던킨도너츠 야간
미국 경찰은 왜 이렇게 도넛을 좋아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24시간 던킨도넛에서 잠시 알바를 했었는데 정말 수시로 경찰들 옵니다. 신기한 건 돈은 안 내고 팁 통에 팁만 조금 주고 가는데 매니저 형도 별말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국도 비리와 공권력 남용이 판을 치는구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일부로 경찰들에게는 무료로 도넛과 커피를 제공해서 위험한 새벽시간에 경찰들이 자주 들락 거릴 수 있게 해서 범죄 예방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밤 10시 정도에 가서 다음날 6시 까지(?) 하는 알바였습니다. 뒤에서 빵 굽고 (빵 꺼내다가 얼굴 데임), 빵 안에 무슨 슈크림 같은 거 넣는 거 하고, 글레이즈도 바르고 등등등. 오래 못했어요. 일단은 차가 없어서 가기 힘들었고, 거기서 저를 픽업해서 가긴 했었는데 새벽에 너무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막 이상한 아저씨들 화장실 좀 쓴다고 들어와서 거기서 거의 무슨 샤워하고 심지어 나오지도 않아요. 거기서 자는 분도 계시고. 나중에 들어가 보면 휴지 한 바가지 쓰레기통에 넣어놨습니다. 여드름 짠 거 같은 피도 묻어 있고요. 그래서 오래 못했었습니다. 이거는 하룻밤에 $60 정도 받았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 생각하니 무료 도넛 없었으면 큰일 났을 수도 있겠네요.
3. 한국 대형 식품 마트
거의 모든 한인이 이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으로 따지면 이마트? 같은 건가 싶네요. 저와 제 동생 그리고 ㅎㅋㅋ라는 친구 한 명과 함께 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아직도 말씀하십니다. "ㅎㅋㅋ이라는 친구는 집도 잘살고 굳이 그 고생할 필요 없는데 너네들이랑 함께 하려고 고생했다고.저는 시식코너 삼겹살에서 일했고요, 맛있게 구워서 제가 다 집어 먹었더니 외국인 손님들이 "졸래 맛있게 먹네?? 맛있어?" 라며 많이 사갔습니다.
나중에는 킹 오이스터 머시룸으로 옮겨갔죠. 제 동생은 힘들다고 소문난 김치코너. 계속 버무립니다. 틈틈이 화장실 갈 때마다 제 쪽에 오곤 했는데 우는 표정으로 15분에 허리 한번 핀다고 그러더라고요.... 저에게 올 때마다 삼겹살 두 줄씩 얻어먹고 가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ㅎㅋㅋ 친구는 밖에서 장 다 보신 분들 짐 차까지 실어 드리는 일. 엄청 더운 여름이었는데 거의 일사병으로 쓰러질뻔한 거 겨우 버텼다고 하더라고요. 체력도 좋은 놈인데. 원래 좀 피부가 까만 편인데 그 일하고 더 까매졌습니다.
재미있는 게 당시 저희가 고등학교 일본어 1 수업을 다 같이 들었는데, 이 선생님(일본분)께서 해산물 장 보러 오셨다가 저희 셋을 보고 엄청 놀래셨습니다. 그리곤 금세 눈물을 글썽이셨죠. '아마 우리가 수업시간에 맨날 자는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한 주말 내네의 노동으로 인한 거구나....'라고 생각하신 거 같습니다. 밤새 리니지 수중 던전 도느냐고 그런 건데... 여하튼 그 이후론 수업시간에 자도 깨우지 않으셨더랬죠. 참 마음이 착하신 분이었는데 지금은 잘 계시나요 에브라함 센세이..
당시 시급으로는 $7.25 받았었습니다. 최대 장점은 시식하는 애들이 대부분 또래애들 이어서 돌아다니면서 부담 없이 얻어먹곤 했습니다. 심지어 교환도 했었죠. 제가 삼겹살 두줄을 가져다주면, 저쪽에서는 소라를 한판 삶아 온다던지, 아니면 만두를 몇 개 가져온다던지 등등. 동생은 김치여서 아무도 교환을 안 해줘서 저에게 빌붙어 먹었습니다.
4. 베이글 가게
동생은 베이글 가게에서 알바를 했었죠. 새벽 5시에 가서 빵을 굽고, 학교를 갔다가, 오후에 다시 가서 캐쉬어 겸 마감을 했었습니다. 시급으로는 약 $8.00 정도를 받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사실상 일하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아서 수입이 적고, 스케줄도 새벽에 두 시간 방과 후 두어 시간 하니 너무 애매하고 새벽에 나가야 해서 잠은 못 자고 해서 오래 하진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새벽에 오면은 마감까지 있는 게 보통인데, 고딩이는 어른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죠. 딱 힘든 일/사람들이 꺼려하는 일만 적은 시급으로 시키기 위해서 동생을 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오르막길은 고생스러우니까 동생에게 시키고 내리막길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더 싼 애로 써야지 하는 느낌?
5. 이삿짐 나르기
고등학생이 들은 어딜 가든 어른들의 먹잇감인 것 같습니다. 이거는 매일매일 하는 알바는 아니고 주말만 했었는데요 저희가 또래에 비해서 힘을 잘 썼던 거 같습니다. 힘이 센 건 아닌데 요령이라고 할까요? 매주 부르셨는데 한 번은 A에서 B로 나르는 거로 얘기를 하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다 끝나면 퇴근하는 걸로 했었는데요 저희가 요령이 너무 늘었던걸 까요? 오후 5시 정도 예상했었는데 저희의 폭풍 같은 시너지로 1시에 다 끝내버렸어요. 피아노도 잇었는데 2층까지 어떻게 잘 날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네요. 한 명은 앉아서 한 계단씩 올리고, 두 명은 위에서 균형 잡으면서 끌어올리고. 이삿짐이 힘든 이유가, 헬스도 무거운 걸 드는 건 마찬가진데 이삿짐은 첫 번째로 제대로 된 손잡이가 없어서 같은 무게여도 힘이 훨씬 빠집니다. 두 번째로는 똥 빠지는 힘을 일정한 패턴으로 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힘을 줘야 하는지 미지수여서 있는 힘껏 힘쓰는걸 자주 반복하게 돼요. 그래서 엄청 지치죠. 그래도 일찍 끝냈다는 마음에 보람차게 퇴근 준비를 하고 차에 타고 저희는 타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눈을 뜨니 다른 현장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두 탕 뛰었습니다.. 분명 그 현장에도 일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일을 반도 안 끝내 놓았더라고요. 보니까 담배만 엄청 피고 수다만 떨고 일은 안 하고.. 저희가 투입되고 일도 저희가 다 했습니다. 오히려 저희 오니까 더 편하게 쉬시더라고요. 밀리지 않고 끝나긴 하겠구나 라고 짐작하셨는지.. 제일 형으로서 욕이 나왔습니다만 집에 안 데려다줄까 봐 그냥 조용히 일 다 끝내고 돈 받고 그 이후로는 연락 와도 안 간다고 했습니다. 건당 두당 $100 정도 받았었습니다. 우리 미안한 ㅎㅋㅋ은 집 잘 사는데... 저희 때문에 이삿짐 알바도 함께 했었죠.
여기까지 고등학교 때 했던 알바고, 원칙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아빠 일에 투입될 계획이었으나 아빠일 막일 너무너무너무너무 하기 싫고 힘들어서 다른 일들을 어떻게 해서는 찾아봤었습니다.
6. 카이로프랙터
요즘 유튜브 자주 뜨죠? 허리에 목 등등에서 두두둑 소리 나는 거. 제가 일했던 척추신경치료 같은 곳인데 보통 교통사고가 나셨다거나, 디스크가 있으시거나, 허리 통증, 어깨 통증, 재활 치료 등등이 필요하신 분들이 찾는 곳입니다. 제 사촌동생이 교통사고 나서 환자로 갔다가 저에게 소개해줘서 이곳에서 알바를 했었습니다. 환자분들 오시면 기계 작동시켜드리고, 물침대 켜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그 외 청소, 빨래 등등을 관리했었습니다. 일 자체는 너무 편하고 쉽고 스케줄도 잘 맞춰주고 좋았어요.
손님 한번 기계 켜드리면 보통 15분 정도 소요되는데, 오시면 보통 기계 치료 두 가지 받으시니까 30분 정도 꿀 같은 휴식 타임... 진짜 좋았었는데.. 나는 불만 없었는데.... 왜.... 왜.......... 같이 일하던 분들이 갑자기 (3명) 이 유니폼 벗고 쓰레기통에 옷 던져 버리고 나가셨습니다.
아니 왜....... 이유는 아직도 몰라요. 그리고는 추후에 매니지먼트와 좀 문제가 있어서 저도 그만두었습니다. 1년 좀 넘게 일한 거 같은데 시급으로 $8.25-$8.50 정도 받았던 거 같습니다. 치료 과정 중에 허리/등/목 근육 등에 Ultrasound Therapy를 하는데 그러려면 상의를 벗고 엎드려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가끔 고등학교 여자 동창들이 오면 좀 난감하곤 했습니다. 서로 어색해요... 그래서 다른 형들이 대신 들어가 주고 대신 다음분을 제가 들어가는 식으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7. 물 배달
5갤런짜리 정수기 물 아시죠? 그거 배달하는 거예요. 큰 트럭에 물통을 잔뜩 싣고 두 명이서 팀으로 (운전하시는 분 + 저)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물통 배달해드리는 것입니다. 이일도 너무 좋았었습니다. 왜냐면 새벽 일찍 나가면 첫 번째로 물 배달하는 베이글 가게에서 맛있는 베이글 하나씩 먹고 시작하거든요.
처음에는 물통 하나 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한 손에 하나씩 악력으로만 들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단점이라면 가끔 미끌해서 떨어뜨리면 거의 100% 확률로 물통이 깨지고 그러면 $5 물어내야 합니다...
다른 단점은 엘리베이터 없거나, 아니면 파킹하고 거리가 먼 곳 있어요. 그럴 때는 나의 팔목아 제발 버텨다오 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뛰지는 않지만 뛰는 것과 같은 속도의 걸음으로 배달을 하죠. 이런 집 10개 이상 돌면 다음날 응가하고 뒤처리할 때 손목이 욱신 하고 저려옵니다. 분명 달리 (구루마?) 가 있는데, 그때 그분이 성격이 급하셔서 그거 꺼내고 다시 싣는 시간에 그냥 들고뛰라고 ㅋㅋㅋㅋㅋ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차에서 보내서 쉬는 시간이 충분하고 점심도 샌드위치 사줘서 외식을 할 수 없던 저로서는 아주 행복한 알바였습니다. 일당은 $70-$80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8. 쇼핑몰 안에 있던 스무디 가게
동생 놈이 아르바이트했던 곳인데요 큰 쇼핑몰 안에 있던 커피&스무디 파는 가게였어요. 정식적인 가게 느낌은 아니고 가운데 조그마한 노점상? 같은 느낌으로 많이들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곳인데 장사도 그럭저럭 잘되고, 주인 아주머님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100% 동생에게 맡겼기 때문에 아주 프리 하게 일했었습니다.
바로 옆에 월남국수집이 있어서 가끔 놀러 가서 사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가게를 동생과 제가 인수하는 게 한때의 목표였는데 그 쇼핑몰 자체가 리모델링하느냐고 다 닫았어요. 시급으로 $9.00 정도 받았던 거 같습니다.
9. 야간 뷔페
이것도 동생 놈이 했던 알바인데요. 밤새 오픈하는 뷔페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밤늦게 까지 하는 음식점이 없어서 클럽 다녀오는 사람들이나, 늦게까지 술 마시고 놀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마땅히 없어요. 사장님이 그걸 노린 건지 밤새 오픈하는 뷔페를 열었었는데 장사 무지 잘됐습니다.
저도 한번 놀러 가서 LA 갈비 엄청 구워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동생도 재미있게 일하고 거기서 외국인 친구들 많이 사귀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사장이 결국 돈 떼먹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여기는 시급은 $2.50? 정도였는데 팁으로 대부분을 벌었습니다. 많이 벌 때는 하루 $250 도 벌고, 적게 벌 때는 $50 벌고 했던 거 같아요.
10. 한국 식당
위에 뷔페를 그만둔 동생은 제가 일하고 있던 한인 식당에 불러 들었죠.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제 블로그에 무조건 등장할 수밖에 없는 ㅈㅃ이라는 친구도 불러서 같이 일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문받고, 음식 서빙하고, 전화받고, 청소, 음식 리필 등등이 주 업무였는데 진짜 발바닥에 불나 도록 바뻤었는데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친한 사람들이랑 일하니까 몸이 힘든 거랑은 별개로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재미있게 일하니까 손님들도 좋아하고 그때 팁 진짜 쏠쏠하게 벌었었습니다.
어떤 흑인 아조씨는 $10불어치 밥 먹고 너무 기분 좋게 먹고 간다고 팁을 $50 주시는 경우도 있었고, 가족들이랑 외식 왔다던 백인 아조씨는 한 $70 정도 먹고 팁으로 $100 주신 경우도 있어요. 하여튼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래도 체력 때문에 못할 거 같아요. 사장님도 잘 봐주셨고, 매니저 누나도 엄청 좋은 사람이었고, 주방 이모들도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시급은 $2.50이었나? 그런데 팁이 잘 나와서 잘 나오면 하루 $300도 벌고 못 벌 때도 대략 $100은 무조건 넘게 벌었던 거 같아요. 그만둔 이유는... 어쩌다 보니 아는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나더라고요. 고등학교 동창, 성당 사람, 동네 친구, 대학교 같은 클래스 심지어 같이 지금 수업 듣고 있는 애들 등등등. 약간 신경 쓰이는 건 있어도 별로 불편한 건 없었는데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편해하는..... 결국 ㅉㅃ이라는 친구가 군대 가면서 그만두고, 저도 조금씩 스케줄이 바빠져서 일을 줄이다가 보니 그만두고 결국 동생만 남아서 일하다가 동생도 그만뒀습니다.
11. 다시 돌아온 노가다
아버지 일이 바빠지고 받아오는 일들이 조금씩 커짐으로써 영어도 필요해지고 해서 제가 돕기로 나섰습니다. "그럼 제가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도울게요"라고 말씀드리고 조금씩 아르바이트식으로 도와드렸는데, 이게 일의 특성 한 한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어요.. 계속 컨택하던 사람이 하고 관리하던 사람이 하고 해 야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풀타임처럼 일했습니다.
새벽 일찍 나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밤 수업 들으러 학교 가고.. 이때 몸이 좀 많이 망가졌죠. 눈도 더 나빠지고, 먼지 때문에 안구건조증도 왔고, 땀 많이 나서 그런지 무... 무좀 (위에 한국 식당 때부터 약간식 기미가 보였었음), 몸도 상하고, 어깨도 다치고, 점심때는 갈증 나서 매일 하루에 소다 두 캔씩 먹다 보니 당뇨도 많이 올라갔었고. 근데 살은 또 안 찌는데 배만 나오는 거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하여튼 다시 하라면 못하는데 당시 좋았던 점은 다른 알바들과 비교도 안되게 돈이 잘 된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여름에 일이 좀 많고, 겨울에는 손가락 빨고 하는 날도 있긴 한데 벌 때는 진짜 잘 벌어요. 저는 일당 $120 받았었는데 제 일당을 떠나서 가족들이 먹고사는 걱정 안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 했었어요.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소규모 회계법인에 취직했고, 동생이 노가다 바통을 받게 되죠. 그전까지는 설렁탕집 야간 알바를 했었습니다. 동생이 받은 후 사업은 계속 조금씩 조금씩 커져갔고 추후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주는 이벤트가 발생하긴 하는데 그전까지는 그래도 최소한 다음 달 집세는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한동안 안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메인 홈피 사진 보시면 옆에 동생녀석이랑 페인트 칠하는...)
12. 설렁탕집
동생은 주로 야간일을 많이 했었어요. 얼굴 팔리는 게 싫어서 그런 건지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야간 하면 손님이 별로 없어서 돈이 안될 텐데... 해도 늘 어딜 가든 잘 벌어왔습니다. 여기도 위에 뷔페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출출한 사람들이나, 술 마시고 놀다가 음식점 문 닫아서 갈 곳 없는 사람들 등등이 주 고객이었습니다.
12시간 쉬프트였는데 진짜 동생 이때 얼굴 늙는 게 나날이 보였었죠. 밤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하는 일이었는데 그러고 나면 낮에는 푹 자야 하는데 그게 또 허락되는 집이 아닙니다. 낮에는 심부름, 영어 전화, 가끔은 또 급하게 아빠일에 투입되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새벽에 음식 서빙하다가 기절하듯이 쓰러지다가 설렁탕 하나 엎어서 그 이후로는 그만뒀습니다. 이것도 하루에 $150-250 사이 잘 벌어왔었던 거 같아요.
13. 한국 빵집
동네에 나름 트렌디한 빵집+음식을 하는 빵 음식집이 생겼는데 동생이 또 여기서 일했었습니다. 제가 놀러 가서 맛있는 티라미슈 케이크 하나 달라고 했는데, 케이크 위에다가 '즐'이라고 써서 가져왔던 것을 사진으로 찍어놨는데 지금 찾을 수가 없네요. 여기는 돈이 너무 안돼서 그만뒀습니다.
14. 편의점
아버지와 사이좋게 노가다를 끝내면 저녁에 수업을 갔었잖아요? 그리고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었습니다. 세븐일레븐 같은 체인은 아니고 개인으로 하시던 분이셨는데, 조금 부촌에 있던 편의점이었습니다. 진정한 꿀 알바였습니다. 단점은 정신적으로 약간 대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아파트 맨 아래층에 있는 편의점이었는데 저에겐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내 나이 또래인데 유학생으로 보이는 그분이 매주 맥주+안주+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사가는데 내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저렇게 쉽게 쓰네.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엇습니다. 대형마트 가면 훨씬 더 싼데 여기서 이거를 이 가격에....?
편의점이 크지 않고 일 자체도 크게 바쁘지 않아서 틈틈이 학교 숙제 같은 거 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꿀 알바였네요. 주중에는 육체적으로 힘든데, 주말에는 육체를 회복하며 돈도 벌고, 점심때는 먹고 싶은 사발면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일본 가락국수 이런 것도 있는데 진짜 꿀맛!
이 시기에 제가 코피가 좀 자주 터졌었는데 하필 사장님이 체크하러 오실 때마다 코피 터져서.... 조심스럽게 그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그만뒀습니다. ㅠㅠ 처음 코피 터진 날 손님도 잇는데 당황해서 화장실 달려가서 물 틀어놨는데 처음 알았습니다.. 코피와 뜨거운 물이 만나면 거품이 난다는 걸. 학교에서 시험 보다가도 코피 터지고 그래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외에도 틈틈이 단타로 하루짜리 골프장 알바, 한인회 행사 알바, 새벽 빌딩 청소, 출사 보조, 잔디깎이, 눈 치우기 등등도 했었더랍니다. 참고로 눈 치우는 날 저 위 11번에 거론된 ㅉㅃ이라는 친구가 군대 갔다가 막 전역해서 저희 집에 머물렀었는데요, 그 친구가 돈 필요하다고 해서 데리고 나갔었는데, 눈 다 치우고 나서 "형 군대에서도 이 정도는 안 치웠었어요"라고 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만히 추억해보니 재미있네요. 이상한 점은 그때는 무슨 일을 하든 재미가 있었습니다. 제가 벌어오는 돈이 나를 위해서 또는 가족의 삶을 위해서 쓰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작은 돈을 받아도 집안에 크게 티가 나니까 뭔가 보람도 느끼고. 아 물론 지금도 행복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상상도 못 하게 나아진 삶이죠. 그래도 그때가 뭔가 낭만이 있네요.
이렇게 해서 제가 미국에서 한 알바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알바만 계속했어도 먹고는 살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몸이 좀 더 피곤하다거나, 더 많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거나, 노후 &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더 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걸 떠나면 한 달 한 달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거만을 바라고 살진 않으니 계속 저 일들을 하며 머물러 있고 싶진 않겠죠.
그렇게 아르바이트하며 삶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흙수저 이민자의 거의 정석 루트지요. 실제로 많이들 그렇게 하고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이어서 가능해요. 그 이유는? 한국인은 똑똑하니까! (전 포스팅 참조). 위에 거론된 것들 거의 대부분 외장하드 어딘가에 사진들이 다 있을 텐데 와이프느님 주무시면 틈틈이 찾아서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보아선 안될 사진들이 알게 모르게 튀어나오더라고요.
한국은 이제 아침이겠네요. 모두들 좋은 하루, 웃을 일 많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포스팅에서 뵐게요.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답글 달아주세요.
'미국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두상 교정 - 찌그러진 머리 (0) | 2021.07.14 |
---|---|
테슬라 미국 주식 접습니다 (20) | 2020.07.25 |
미국 살면 좋은점 vs 나쁜점 (22) | 2020.07.15 |
미국 집 DIY로 직접 리모델링 해보기 (4) | 2020.07.07 |
미국 살려면 영어 실력 얼마나 되야할까? (7) | 2020.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