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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딱망해 흙수저로 전락한 미국이민 생존기

EasyLife 2020. 6. 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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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딱망해 흙수저로 전락한 미국이민 생존기-그래도 미국이 더 살기 좋은거 같아

 

2002년 우리나라가 월드컵으로 한참 뜨거울 때 저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더랬죠. 어느 날 갑자기 어무니 & 아부지 께서 통보식으로 '우리는 곧 미국 갈거니 주변을 정리하거라'라는 한마디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마췄습니다. 친구들이랑 서로 울고 불고 5년 이내로 성인이 되면 내가 꼭 돌아오리라..라는 기약 없는 약속을 뒤로한 채 미국 동부에 위치한 버지니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무슨 번개불에 콩궈먹듯이 이렇게 급하게 미국을 가지.. 뭐 범죄 같은 걸로 쫓기고 있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어디 결혼식 갔는데 남매 두 명이서 영어로 쏼라쏼라 하는 거에 완전 꽂혀서 미국행을 결정했다고 하네요.??? 그게 뭐야....... 미국에 사시는 사촌분들과 오래전부터 상담 및 계획을 했고 엄마는 미용, 아빠는 요리 자격증 딴다고 한참 학원 다니시고 그랬었습니다. 가서 할거 없으면 기술이라도 배워놔야 한다고.

 

제가 사는곳은 버지니아 인데요. 저렇게 커보이지만 사실 디씨 바로 아래 있는 정확하게는 Northern Virginia 라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수도 근처이다 보니 사람들도 많이 모여살고 일자리도 많고 집값도 비싸고 물가도 비싸고 한인들 많고 막상 디씨 1시간도 안걸리는데 절대 안가게되는 애매한 위치입죠.

 

영화에서 보는 수영장이 딸린 집에 끝이 보이지 않는 마당 그리고 잔디만 깎아도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은 여유로움. 내 그것들을 누리러 가리라 하는 희망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처음 와서 사촌집에 잠시 머물렀는데 집도 3층이고 deck 도 있고 yard 도 작지만 꽃도 키우고 완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기당해서 아부지가 강제 금연을 하시기 전까지는요.

 

아무래도 딸린 자식이 있으니,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던 부모님께서는 뭔가 이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크게 당했습니다. 사기요. 한번 아니구요. 두 번이요. 쫄딱 망해서 사촌집 지하실에서 평생 살뻔했습니다. 얘기하자면 긴데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교훈은 1) 타지에서 현지 한국인은 믿지 마라 2) 미국에서는 서류 잘 봐라. 영어를 못하면 사전이라도 찾아가면서 한 줄 한 줄 다 읽어라. 정도가 되겠네요.

 

그렇게 사기를 크게 때려 맞고 생존을 위해서 아버지는 건설업 (이라고 쓰고 잡부라고 읽는다) 어머니는 요식업 (이라고 쓰고 델리에서 샌드위치 싸기)으로 새벽 5시부터 저녁까지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게 됩니다. 델리에서 샌드위치 싼다는 게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아침 5시부터 주야장천 싼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 저 왔을 때 당시 특별한 기술 없이 이민오신 한국인들은 주로 집수리(페인트, 마루, 화장실 리모델링, 루핑), 세탁소, 봉제공장, 델리, 한국음식점 웨이터/웨이트리스로 일하시곤 했습니다. 돈 좀 가져오신 분들은 주로 주유소를 매입/투자하셨고요.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서 절대 안 망하는 비즈니스 + 철밥통 + 불로소득이라고 그랬는데 요즘은 또 많이 안 보여요. 최근 이민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그런지 위에 일 하시는 분들은 많이 안보이시는 것 같구요. 세탁소, 봉제공장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델리도 요즘 워낙 패스트푸드가 발달해서 그런지 하시는분들 많이 줄었습니다. *

 

 

 

 

당시 저와 제 동생은 고등학생 이었는데 당연히 저희의 목표는 하루빨리 졸업해서 아버지 하시는일 따라다녀서 집안에 하루 빨리 도움이 되는것이엇죠. 그렇게 공부를 놓으니 시간은 남고 그 남는 시간은 어떻게 해야지 지금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남은 시간을 모조리 리니지에 쏟아 부었습니다. 법사였는데 나름 서버에서 방귀좀 끼고 있었드랬죠. 아이디를 전여친 이름으로 해서 밝히지 못하는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잘 지내니?

 

그렇게 용계삼거리 싸움을 앞두고 초조함과 긴장감에 일단 목을 적셔야겠다 라는 마음에 물뜨러 위층으로 후다닥 뛰어 올라가서 물을 뜨고 다시 후다닥 내려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아부지 어머니 할머님 세분이 티비 앞에 앉아서 대화중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메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 얼굴과 손, 팔에 묻은 페인트를 닦아내시면서 나지막히 "@%*&^ !@#$  !@#&& ^&****#$ 대학이라도 한명가면 그래도 이 고생하는게 보람이라도 있을텐데 지원을 해줄수가 없으니...." 라는 말을 스치듯이 엿듣게 됩니다.

 

갑자기 얼마나 마음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거울의 숲에서 변신 주문서 많이 모았다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보이는 동생을 보며 '오케이 이새끼는 글렀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저는 급하게 대학을 준비하게 됩니다. 당연히... 명문 대학 이런건 쳐다볼수도 없고 집에서 가깝고 내가 돈 벌면서 다닐수 있을만한 4년제 대학에 지원하고 덜컥 붙게 됩니다. 대학 지원서를 넣을려면 SAT 라는 한국식 수능(이라고 말하지만 훨씬 공부양도 적고 쉬움)을 봐야하는데 한국인의 뇌지컬로 수학은 그나마 상위건으로 마무리짓고, 영어는 대략 5살짜리정도의 언어능력을 검증받고 입학하게 됩니다. 너무 좋았던게 집에서 한 10분거리였어요. 가까워서 자전거로도 통학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등록금이 저렴해서 어떻게해서든 내가 벌어볼수 있겠다 라는 생각으로 지옥의 전초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부지가 무뚝뚝하지 않으세요. 밝고 잘 웃고 농담도하고 장난도 많이 치시는 분인데, 미국와서 처음에 오셔서 삶에 지쳐서 웃음을 잃으시다가 그 대학 그렇게 좋은 대학도 아닌데 합격증 가져왔을때 그렇게 밝게 웃으시던게 생각나네요.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밝게 웃으시던거. 제가 미국와서 아버지 잊지 못하는 표정이 두번있는데 한번은 저 입학했을때, 또한번은 7년간 긴긴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했을때. 한번은 환하게 웃으셨고, 한번은 나라잃은 김구선생님처럼 우셨다고 그러시네요 어머니가. 아 물론 저희 없을때요.

 

 

차로 가는거보다 걸어서 길 건너고 언덕길 올라가면 바로 캠퍼스. 말그대로 도보 10분거리

 

첫학기는 부모님이 등록금을 내주셨구요 그 이후로는 제가 벌어서 + 친구들이 내줬어요. 추후에 멘션 되겠지만 저는 참으로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며 매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학교때 에피소드가 어마어마 많은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스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만난 친구들 인연들 8명이 아직까지도 다들 근처 근처로 이사다니면서 약 10분거리 이내에 살며 매번 새로운 돌아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결혼하고 애 낳고 해도 변하지 않는 놈들이 있긴 있나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사는게 한국 사는거보다 더 쉬운거 같다는 생각이에요. 최소한 열심히 노력하면 그거에 대한 기회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좀더 확실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한국에서 노오오오력~~~~?? 이라고 하면 학을 떼자나요. 노력해도 보상이 보장되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회사/사회 생활을 해본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한국 친구들 연락해보면 뭔가에 쫓기는 느낌을 항상 느낍니다. 미국에 살다가 (심지어 영어권) 한국간 친구도 몇년만에 놀러와서 술한잔 하는데 변했더라구요. 예전에는 칭찬에 능하던 놈이었는데 어느새 대화중 계속 남의 성과를 낮춰 말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어차피 다 안된다는 부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해서 깜짝 놀랬어요. 혹시나 한국이 그런 분위기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다시한번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한국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나의 나라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근데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제가 쏟은 노력대비 지금 제 삶을 생각해보면 (부자아님) 내가 이정도 노력을 해서 한국에서 지금의 삶을 가질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보게 되는데 아마 택도 없었을거 같아요. 한국은 땅덩어리는 좁은데 똑똑한 사람들이 넘나 많고 또 그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자나요. 

 

 

 

 

앞으로도 차차 느끼는 바를 적어보도록 할게요. 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생각하시는분들이 게시면 포스팅이 도움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성공적인 이민생활, 핑크빛 스토리 등등 이런거는 여기저기 많이 있으니까 저는 완전히 현실적인 저의 짠내나는 이민 스토리를 살살 풀어보도록 할게요. 

 

오늘은 그래도 많이 썻네요. 쓰고싶은말이 어마어마 하게 많은데 아직 글쓰기가 익숙지 않은지 머리속에서 내놔야 할 말들은 많은데 글로 다 적을수가 없네요. 쓰다보면 글쓰기도 늘겠죠? 괜찮아요 시간은 많으니까. 와이프느님이 종아리가 땡긴다고 와서 마사지 해달라고 하네요.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존재한다면, 저희집에는 가정명령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와이프느님만 발동시킬수 있죠. 마사지 하러가야해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뵈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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