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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나

심각한 길치인 나, 미국에서 길 잃지 않는 방법

by EasyLife 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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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길은 쉽다고들 하죠. 동서남북만 알면 된다고요.

근데 저한텐 그렇지가 않아요. 누군가가 "거기서 동쪽으로 쭉 내려와"라고 하면 저는 과호흡이 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심각한 길치거든요.

 

 

 

얼마나 심각한 길치인지 말씀드리자면, 집에서 요이땅~ 하고 출발하면 딱 15분 거리를 2시간 넘게 헤맨 적이 있습니다. 중간에 너무 무서워서 사촌, 친구들에게 전화했었는데 제가 있는 장소를 설명 못해서 눈물이 나더군요. 왼쪽으로 왔는지, 오른쪽으로 왔는지 좌우 감각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아무리 다그쳐도 내가 어딨는지 설명을 못하겠다는... 

 

"옆에 엄청큰 건물 있고 초록색이야" 

"???? 뭔소리야. 어디쯤인지를 말해봐바. 어디서 어떤 도로 탔어?"

"흰색 건물들 많은곳에서 우회전 했었는데"

"???? 흰색건물이 수십갠데. 처음에 어디서 시작해서 제일 처음 탄 큰길이 뭐야?"

"처음에는 집앞에 있는 도로가 제일 컸지 그거 타고 왼쪽 왼쪽 두번 했어"

"?????????? 차에타서 운전석에 앉자마자 정면에 보이는것들 말해봐바"

"나무, 철장, 빨간 벽돌"

"?????? 넌 그냥 911 불러라"

이런 패턴입니다.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을때는, 좀 멀리 있는 회사였는데 첫 출근 전날 와이프와 함께 리허설하듯 회사 출근길을 운전해보러 다녀왔었습니다. 아 물론 그 이후로 3년간 오직 그 길로만 출근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이 막히나, 차량 통제가 있거나, 사고가 났거나 상관없어요. 무조건 그길로만 갑니다. 왜냐면 다른길을 모르고, 모르는길을 가는건 너무 무서우니까.

 

네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일인분은 커녕 반인분도 못하는 사람이었을거에요. 저에게 지상 최고의 발명품은 네비게이션입니다. 단연코 최고에요. 셀폰에다가 네비게이션을 넣을 생각을 한 누군가에게 100번이라도 절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사회생활하는데 겪는 불편함중 90%는 해결 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10% 이제 차 말고 실내에서 길 잃는경우가 좀 있어요. 쇼핑몰(백화점) 에서도 길을 잃기 일쑤입니다. 화장실 등으로 일행들과 잠시 떨어지면 이제 쇼핑 끝날때까지 서로 못 만나요. 심지어 리니지 할때는 게임안에서도 길을 잃어서 사촌형이 많이 황당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길치라고 하면 우습게 넘기는 분들이 많은데, 당사자는 정말 미치는 병(?) 이에요. 길치라고 하면 다들 무슨 농담처럼 쉽게 생각하시더라구요.

 

저는 "거기서 동쪽으로 쭈욱 내려오면 건물 보여", "무슨 도로에서 빠져서 xx 지역쪽으로 쭉가" 이런 말이 제일 싫습니다. 뭔소리 하나 싶어요. 저는 네비게이션이 단 10초라도 꺼지면 극도의 패닉 상태가 됩니다. 후훗. 자랑은 아니지만 이정도 길치 주변에 없죠?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가 상처가 되는 말을 하더군요. 빠르길 두고 맨날 편하고 아는길로만 간다면서 핀잔을 줬습니다. 그나마도 잘못가서 길 한번 해맸더니

 

"오빠는 길치가 아니야. 그냥 성의가 없는 거지. 좋은 머리 가지고 몇 개 안 되는 길을 왜 못 외워? 다른 필요한것들은 엄청 잘 외우면서?"

 

라고합니다.

 

그 순간, 와이프는 길치가 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히 '몇 개 안 되는 길'을 외우는 것과 길마다 "여기서 왼쪽, 저기서 오른쪽, 좌좌 우우우 좌 우" 를 기억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걸 모릅니다. 거기다가 낮에 가는길과 밤에 가는길은 사실상 같은 길이라도 완전히 다른 길이기에, 같은 길이어도 두번 외워야 합니다.

 

그래도 뭐라고 못하는게 와이프는 길 감각이 좋습니다. 제가 길을 잃어 빙빙 돌다가 새로운 곳에 도착해도 대충 이쪽으로 나가서 북쪽으로 쭉 가면 될거 같은데? 그러면 엄청 미심쩍지만 시키는대로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는 길들이 나옵니다. 정말 신기해요... 제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젤 부러운 능력입니다

 

어째뜬 와이프의 핀잔에 상처를 입은 저는 결국 구글맵을 켜고 우리 동네 길들을 하나씩 공부햇습니다. 아~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가는구나. 오 이 길을 일자로 가는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둥글게 생겼었네 등등등. 그러던 중에 미국 도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우리가 흔히 보는 도로 명칭들, Rd., St., Dr. 등에는 다 뜻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알았어요. 미국 20년 넘게 살았는데 한번도 신경 써본적이 없었네요.

 

미국 집 / 빌딩 주소가 보통 이렇게 이루어 집니다.

1234 example rd, columbia MD 21044 또는

4321 merong st, redmond WA 98052 또는

13579 hungry dr, oxford GA 30267

 

미국 사는동안 rd, st, dr, ct 등등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사실 관심도 없었음) 찾아보니 다들 의미가 있더라구요.

 

 

• St. (Street): 도로를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입니다. 도시 내의 주요 도로를 나타내며, 보통 남북 방향으로 연결됩니다. 몰랐어요. 전혀 몰랐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st 입니다.

 

• Ave. (Avenue): Street와 유사하지만, 보통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도로를 의미합니다. 큰 도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패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거는 디씨나 뉴욕 가면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냥 Avenue 가로수길 같은 길을 말하는줄 알았습니다.

 

• Blvd. (Boulevard): 보통 양쪽에 나무가 심겨 있는 넓은 도로를 뜻하며, 주요 도로로 사용됩니다. 주로 도시 외곽을 지나는 큰 도로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사실 이거는 잘 못봤어요. 워싱턴에 가끔 자전거 타러 가면 Wahsington Blvd 지나서 가자는 얘기는 종종 들었습니다.

 

• Ct. (Court): 짧은 막다른 도로를 나타냅니다. 주거 지역에서 자주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구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이었구나... 제가 지금 살던집 전 전집이 ct 였거든요. 생각해보니 길따라 쭉 내려가서 막다른 골목에 집이 있었습니다.

 

• Dr. (Drive): 길게 이어지는 도로로, 구불구불한 형태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도심 외곽의 경치 좋은 길에 많이 있습니다. 이거는 뭐 솔직히 다닐때마다 죄다 drive 라고 써있어서 특별한 특징을 느끼지 못하겠네요 • Pl. (Place): 막다른 도로로, 비교적 짧고 조용한 주택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Ct.와 비슷하지만, 더 작고 종종 소규모 주택 단지 내에서 사용됩니다. 이것도 실제로는 한번밖에 못봤습니다. 제 친구놈 집이 Pl 이 들어가요. 그냥 ct 랑 비슷한 분위기가 맞는거 같습니다.

 

• Ln. (Lane): 작은 도로를 뜻하며, 주로 협소하고 한적한 도로에서 사용됩니다. 이것도 거의 못본거 같으면서도 본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안나는. 자주 눈에 안띄어서 그런가봅니다.

 

• Rd. (Road):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나타내며, 규모가 크고 장거리 이동에 적합합니다. 이거는 그냥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차 다니는 도로 말하는거 같아요.

 

• Hwy. (Highway): 도시 간 또는 주 간의 장거리 이동을 위한 고속도로입니다. 보통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highway 야 뭐 딱 하면 딱 알아듣죠. 고속도로에요 그냥. 가끔 톨비도 내야하는.

 

 

여기까지는 영어 단어대로 가는구나 뭐 어렵지 않네. 하지만 신기하긴 하다 다 뜻이 있었구나 싶은데, 더 놀라운건 고속도로에 붙는 숫자들에도 의미가 있었다는거.... 아셨었나요? 알았다면 거짓말.

 

 

"미국의 고속도로는 연방 도로 체계(Interstate Highway System)를 통해 조직적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번호에 따라 도로의 방향과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번호 체계는 1950년대에 도입된 연방도로법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저희 어르신들은 길 이름이 영어로 길거나 그러면 죄다 숫자로 부르십니다.

 

"어~ 거기 쭉 가다가 1200 타고 끝까지 가면돼"

"나 지금 123 탔어 10분 정도면 도착해 금방가"

"236 막 지났어 곧 157 탈거야"

 

처음 미국 왔을때 전화 통화로 이러시는거 듣고 무슨 첩보 영화 암호 말하는줄 알았음. 내가 납치라도 당하는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고속도로들 이름이더라구요. 사실 익숙해지면 숫자로 말하는게 더 편하긴 합니다. 막 무슨 무슨 Memorial parkway 지나서 capital beltway 까지 간다음 그러면 그냥 전화 끊어버리고 싶어지거든요

 

 

 

주요 도로와 보조 도로

• 1자리 또는 2자리 숫자로 된 고속도로는 주요 도로를 의미한다고 해요. 이 도로들은 전국적으로 중요한 도시와 주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예를들면: I-5, I-10, I-95 등. I 는 Interstate 를 뜻하는것 같습니다. 주 와 주를 넘어가는 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자리 숫자로 된 고속도로는 보조 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주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주요 도심으로 진입하거나, 지역적으로 중요한 도시를 연결합니다. 3자리 숫자의 첫 번째 숫자가 짝수이면 순환 도로(Loop)를, 홀수이면 교차 도로(Spur)를 의미합니다. 까지 읽고 깜짝 놀랬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495 와 395 두개다 있거든요. 495 도로는 동그랗게 생겨서 가고 가고 가고 끝없이 가다보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395 는 일자로 쭉 뻗은 도로에요. 끝까지 가면 이제 생사를 알수 없게 됩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 홀수 번호: 홀수로 끝나는 고속도로는 남북 방향으로 달립니다. 즉, I-5나 I-95와 같은 고속도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집니다. 숫자가 클수록 동쪽에 위치한 고속도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I-5는 서쪽 해안가를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며, I-95는 동부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습니다.

 

• 짝수 번호: 짝수로 끝나는 고속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습니다. 숫자가 클수록 북쪽에 위치한 고속도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I-10은 미국 남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속도로이고, I-80은 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릅니다.

 

너무 충격적입니다. 고속도로 번호의 체계는 숫자만 보고도 해당 도로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도로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저같은 길치들에게는 어림도 없죠. 내가 지금 어느 도로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할 여유가 있을리가 없어요.

 

하지만 이번에 크게 깨달은건 생각보다 미국 길이 되게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도로의 기능과 위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는거. 예전 어르신들이 지도 보면서 찾아 다니는게 이런 숨겨진 뜻을 이미 알고 계셨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생각인데 아무래도 땅덩어리가 넓어서 이렇게 규칙들을 정해서 만들어놔야 헷갈리지 않고 갈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냥 저는 테슬라 살랍니다. 오토파일럿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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