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범벅이된 바닥을 보고 강도가 든줄 알았습니다.
어머님이 아침 일찍 심장 검사 예약이 있으셔서 모시고 갔었는데, 단식 하고 검사 하는건데 아침에 뭐를 드셨더라구요. 그 닥터도, 엄마도, 저도 어이 없이 웃으며 발길을 집으로 돌렸습니다.
엄마가 몰랐다고 괜히 일빼고 시간 낭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말씀을 안드려서 그런거기 때문에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다시 가면 된다고 위로해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죠.
저는 이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래층에서 "어머 이게 뭐야!!!!" 하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시더라구요.
놀래서 뛰어 내려갔더니 바닥이 피 범벅이었습니다. 바닥, 카페트, 쇼파 심지어 어머니 침대까지. 놀랜 마음에 일단 바로 옆에서 "나를 데리고 가라 닝겐" 이라고 속삭이는 7번 아이언을 일단 꺼내들고, 방으로 급하게 들어가시려는 어머니를 말렸습니다. 겁 없이 어디를 들어가냐, 기다려라 하고서 제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살짝 무서운게 7번 아이언은 좀 짧은거 같아서 5번 아이언으로 바꿔들고 어머니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침대 위에앉아 발가락을 할짝 할짝 거리고 있는 아찌 (우리집 첫째 귀요미 강아지). 목아래 흰털이 피 범벅이 되서는 침대에 앉아서 발가락으로 계속 흐르는 피를 핥고 있더라구요. 조심스럽게 방에 다른 뭐가 있나 탐색하는데 녹슨 쇠 냄새가 확 났습니다. 피에 들어있는 철분 냄새. 소름이 확 돋더라구요
얼굴만 보면 반가워서 꼬리치며 실룩실룩 엉덩이 흔들며 다가오던게, 그냥 가만히 엎으려서 발가락만 핥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상황 파악을 하고 서둘러 아찌 몸을 살펴봤습니다. 어디서 피가 나는건지.
피가 어디서 흐르는지 추적 해보니까 귀쪽으로 부터 피가 흘러 내리고 있더라구요. 털을 좀 걷어내고 자세히 보니 귀가 v 모양으로 짤려있었습니다.
상처가 큰거 같진 않은데 (얘 입장에서는 클수도 있음 워낙 몸이 작아서) 피가 멈추지 않게 계속 흐르더라구요. 글고 주르르륵 흐르는게 아니고 그냥 한방울 한방울씩 떨어지는데 그 한방울이 엄청 커요. 거의 엄지 손톱 크기.
놀랜 마음에 일단 강아지 은나 휴지 둘둘둘 말아서 부위를 압박해주고, 서둘러 욕실로 들고가서 차가운물을 좀 뿌려줬습니다. 차가워지면 피가 좀 빨리 굳어서 지혈이 될거라는 생각이었죠. (고마워요 위기탈출 넘버원)
그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침착하게 대응하다니 정말 나란 남자는...' 라는 자아도취에 2초간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서둘러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와이프 눈을 마주쳤는데 저는 읽을수 있었습니다. '오빠. 너무 멋있어. 존경스러워. 사랑할수밖에 없어.' 제가 두눈으로 분명하게 봤구만유.
그렇게 짧은 자아 도취 시간을 끝내고 피가 좀 멎었나 체크하는데 강아지가 계속 머리를 후드드드득 털더라구요. 털면서 피가 촤아아악 퍼지는데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나. 좀 멋진듯.
어째뜬 좀 지혈해서 멈출라 하면 머리 흔들어서 다시 터져 나오고, 피가 좀 멈출까말까 하며는 또 흔들어서 터져 나오고 해서 이대로는 멈출 기미가 안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욕실이 거의 애지간한 공포영화 현장처럼 피가 사방으로 흩어뿌려져서 (입에도 한방울 들어감. 그래서 좀비 되는거 아닌가 엄청 무서웟음)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수건을 가져와서 얼굴을 감아줬어요. 눈 코 입 빼놓고 귀는 아래로 접어서 돌돌 말아 줬습니다.
그랬더니 머리는 터는게 줄어들고, 살짝 털더라도 수건에 막혀서 귀가 팔락 거리지 않으니 피가 좀 멎는거 같더라구요. 한 5분 정도 후에 풀러봐서 그래도 피가 나며는 밀가루 같은거라도 좀 뿌려서 지혈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상처가 크지 않으니 이렇게 지혈 하다가 소독 해주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눈물이 글썽한 어머님... 병원에 데려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피가 잔뜩 튄 옷을 갈아입을겸 위층으로 올라와서 서둘러 구글링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봤는데, 그런 케이스는 자기네들이 안보니 응급실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다시 응급실을 찾고 잇는데 와이프느님께서 결혼전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위해서 자주 갔던 응급실이 있다고 거길로 가자고 하길래 서둘러 어두운 옷 (피 뭍을까봐) 으로 갈아 입고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셋이서 차 타고 가면서 온갖 추측을 했죠.
"뒷 마당에 풀어 놧을때 너구리나 여우가 왔었나?"
"외계인이 와서 레이져 총 놀이 하다가 실수로 맞혔나?"
"독수리나 매 같은게 와서 데려가려다가 루피 (두번째 덩치 큰 강아지) 가 구해줬나?"
"아니면 루피가 공격한건가? 이제와서? 7-8년을 잘 지내다가?"
"옆집에서 너무 시끄러우니까 공기총 같은걸 쏴서 저기가 뚤렸나?"
"어디 못 같은거에 찔렸는데 잡아 당기다가 찢겼나?" 등등등
수 많은 추측을 하며 엑셀을 밟았고 어느새 저희는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저희집 귀요미 강아지 아찌는 입구서부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어요. 다른 동물 냄새 + 병원냄새가 머리속 어딘가에 깊히 저장되어 있던 공포감을 다시 일깨워 준거 같습니다.
데리고 들어갔는데 수건이 피 자국이 있으니 거기 직원분이 바로 달라고 해서 안고 들어가더라구요. 수의사님이 체크해보고 알려주겠다고 하시고, 저희는 접수를 시작 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접수 하는 순간 $210 기본이라고 하네요. 오케이 뭐 그정도야 예상했었고 우리 아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괜차나. 그리고는 접수하시는분이 물으시긴 "치료중 심장이 멈추면 CPR 심폐소생술을 하실거에요?" 라고 하시더라구요. 당연히 하겠다고 죽는걸 냅둘순 없지 않냐. 했더니 밝게 웃으면서 $180 추가욤. 글고 뭐 이것저것 물으시는데 (병원쪽에 가면 무조건 와이프 밀어 넣습니다. 저는 의학용어들 잘 몰라서) 필요한거같은건 yes yes 하고 아닌거 같은건 no no 했습니다. Yes yes 할때마다 얼마씩 추가된다고 하는데 살짝 불쾌하더라구요. 일단 저는 놀래신 어머님 모시고 구석자리로 가서 앉혀드렸습니다.
그렇게 접수가 끝나고 와이프가 걸어 오더니 "한 $1,000 (한 130만원정도) 나오겠는데?" 라고 하더라구요.
????
일단 급한 상황이니 돈 생각보다는 잘 치료되고 별일 아니기를 가만히 빌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분이 중간 상황을 설명해주시려고 나오시더라구요. 저희는 일어나서 드라마의 한장면 처럼 "저희 아찌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응급처치를 너무 잘해줬다고. 왔을때 이미 피는 멎어 있었고, 다른데 다친데 있는지 체크만 하고 소독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
피가 이미 멎어 있었어???
그렇게 다시 들어가시고 저희는 한 30분가량 더 기다린거 같아요.
어머님께서 저에게 슬쩍 와서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냥 너가 시키는대로 할걸 그랬나? 지혈되면 소독하고 수건 감아 놨으면 됐을거 같기도 하네"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지만 놀래신 어머님을 위해서 온김에 확실하게 지혈받고, 지혈제도 좀 받고, 혹시 모르니 항생제 같은것도 받아서 가는게 좋은거라고 좋게 말씀드리고 속으로는 진즉 내 말좀 듣지 시간 이랑 돈 엄청 날라감.
그렇게 의사 호출로 방으로 들어갔고 갔더니 아찌가 귀여운 빵간망토차차 모자를 쓰고 있더라구요. 이게 뭐냐고 했더니, 강아지들이 머리쪽이 불편하면 얼굴을 터니까 이렇게 씌워놨다고. 우리가 수건으로 감싸온거랑 똑같은건데 좀더 딱딱한거라고. 강아지들이 불편하면 뒷다리로 긁기때문에 딱딱한거 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처치를 너무 너무 잘했다고. 자기네들이 한거는 지혈하고 소독한거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머님 표정이 굳어 지셨습니다.
저는 서둘러 화재를 돌리기 위해서 "짤린 모양이 짐승이 문거 같냐, 아니면 어디 베인거 같냐, 아님 못같은거에 찔린거 같냐" 했더니
힘이 집중된 곳이 저기 v 모서리 쪽인걸로 봐서 짐승이 문거 같다. 집에 다른 강아지가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강아지 덩치는 한 2배 정도 된다고 했더니, 그럼 범인은 그놈이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난 6~7년간 사이 좋게 잘 지냈는데 이제와서 그런일이 생긴다고? 라고 물었더니
강아지들이 서로 살살 물면서 놀고 그러는데, 뛰면서 노는경우 힘 조절이 잘못되서 좀 세게 무는경우도 있다고 그러네요. 듣고보니 그런거 같습니다. 둘이 뛰면서 싸우는척 놀이 자주 하거든요.
그렇게 미스테리 미스테리 하던 궁금증을 얼추 해결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대망의 계산시간 !
랄랄라~ 얼마가 나올까~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정답은?
$390 (약 52만원) 짜잔!
$390 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1,000 생각하다가 $390 나오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느낌!
아니면 처음부터 와이프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부터 어머님 병원부터 아찌 병원까지 오후 4시까지 한끼도 못먹고 고생했고 곧 다시 나가서 일을 봐야 했던 터라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밥을 먹을 생각 이었는데
오. 마.이. 갓
아직도 집은 피바다... 욕실, 쇼파, 바닥, 옷 등등
거기다가 저희집엔 애들이 같이 있으니 피도 대충 못닦겠더라구요. 클로락스로 빡빡 아주 빡빡 청소를 끝맞쳤더니 전완근과 삼두근육이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몸을 추스를새도 없이 일을 보러 나가서 하루종일 강제 다이어트...
그래도 우리 아찌가 큰일이 아니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들 생기니 강아지가 뒷전이 된게 사실인데 너무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앞으로는 잘 해주겠다고 다짐을 하는 하루였습니다. 아찌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대. 우리 귀여운 아찌 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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