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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나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by EasyLife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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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희망은 있다 - 키케로



제가 예전에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살았던 말 중에 하나입니다.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요즘은 딱 세 개만 머릿속에 두고 사는데 추후에 소개해드릴게요.

미국 와서 처음에 크게 사기 맞고 (한번 아니고 두 번) 생전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나기, 옷 얻어 입기, 물로 배 채우기(솔직히 이거는 그냥 참았어도 되는데 배고프니까 물부터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ㅎㅎㅎ), 몸 아픈 거 참기, 이빨 아플 때 참기름 끓여서 잇몸에 숟가락으로 붓기, 차 없으니 네 가족 배낭 메고 장 보러 가기, 차 대신 자전거 타고 다니기 등등등

 

지금 생각하면 미국 살면서 절대 일어날 수도 , 일어나서도,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어서 사실 그때는 크게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행색이 구려서 그런지 스쿨버스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에서, 다른 학생이 근처 집주인 불러서 쟤들이 니 차 주변에 있었다.라고 신고 아닌 신고를 했던 기억이 있긴 있네요. 나쁜…

 

제일 힘들었던 건 사실 사기 맞고 직후가 아니고, 그 후에 삶을 살아가면서 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들어가는 돈도 생기고, 대학교도 아무리 저렴한 곳을 골랐다고는 하지만 등록금도 있고, 밥도 사 먹어야 하고, 애들이랑 공부하면 뭐라도 사 먹고 어울려야 하고, 교과서도 (더럽게 비쌈) 필요하다 보니 그때서야 ‘아.. 우리 집이 돈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새벽부터 막일도 뛰고 오후 수업을 들어가곤 했는데, 아무래도 내 돈으로 내고 다니다 보니 수업 하나하나가 너무 아깝고 절실하더라고요. 늦을 거 같으면 옷도 못 갈아 입고 들어갔었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행색이… 땀 투성이에 페인트도 묻고 먼지들도 털어내도 좀 있겠죠. 시선이 몰리는 게 굉장히 수치스러웠지만 앞자리에 앉는 여학생을 보며 동질감과 마음의 위로를 느끼며 버텼습니다. (그 학생은 제빵복 입고 들어왔는데, 밀가루 굳은 것들 잔뜩 묻어 있었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스가 아메리카) 그렇게 하루하루 이게 끝나긴 하려나….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사실 대학 동기들은 제가 이런 시절이 있는지 잘 몰라요.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빼지 않고 다 참석했고,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술 마시고 하는 것도 처음에는 웬만하면 참석했습니다. 그 시절 만난 친구들에게 아직도 감사하고 사는 게, 그때 친구들이 저를 정말 많이 배려해줬어요. 돈이든, 시간이든, 교과서도 친구가 사면 같이 보게 해 주고, 복사 등등 많이 신세 졌습니다 (보고 있니 ㅈㅃㅇ). 시험기간이면 밤에 도서관으로 치킨 사들고 오는 친구도 있었고(고마웠더 ㅊㅊㅇ), 등록금이 부족해서 달달달 떨고 있을 때 등록금을 내준 친구도 있었더랬죠(레전더리 ㅎㅋㅋ)..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옷도 선물로 (사주면 안 받으니까) 주는 친구(ㄴㅃㅇ) 등등 참 저는 인복이 있는 사람 같습니다. 이 친구들 지금도 다 근처에 살면서 자주 보는데 기회가 되면 친구들 소개 & 자랑 좀 한번 포스팅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미국 생활에 90%는 저 친구들 때문에 버텨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다가 잘 버티다가 한번 크게 무너진 계기가 있는데, 그날은 화장실 공사하는 날로 변기통 하고 세면대 욕조 등등을 허물어내고 새 걸로 갈고, 벽 페인트 + 타일을 붙히는 날이었습니다. 유달리 일이 안 풀리는 날이 있잖아요? 그날이 그날이었던 거 같아요. 오래된 변기통 때어 내는데 금가고 깨져서 물이 흘렀고 은나 덩어리 묻어있는 물이 손을 타고 주욱 흐르는데… 찝찝하더라고요. 그래도 손님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 서둘러 닦고 정리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세면대를 갈기 위해서는 아래 캐비닛에 누운 자세로 기어 들어가서 위쪽을 바라보며 배수관을 조여야 하는데요, 너무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니 엄청나게 행동에 제약이 오고 불편합니다. 오래 하면 거의 목 디스크 고통..  그러다가 렌치를 놓쳤고 머리 위로 떨어졌죠. 아오 아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차가운 물이 이마, 코 위로 똑똑똑 떨어졌습니다. 뭔가 색깔도 냄새도 이상해서 보니, 배수관에 고여있던 똥물이었어요.  

 

서둘러 닦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가만히 그렇게 누워서 또옥 또옥 떨어지는 똥물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살려고 미국에 온건가…. 이렇게 하루 먹고 하루 살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갑자기 문득 무서워졌었어요. 밖에서 수도꼭지 잡아주고 계시던 아버지는 “뭐해? 얼른 돌려”라고 하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고생하시려고 미국에 오신 건가? 뭔가 좋은 기대를 가지고 오셨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내가 부모님께 짐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손님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니 일은 잘 마무리하고 집에 오는 차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칼을 하나 갈면서 다짐했죠.

 

“아직 안 끝났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 

“나는 아직 젊고, 혹여나 젊지 않다고 한다 한들 내 뇌가 생각을 할 수 있고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생각을 매일 했어요. 매일. 사실 평화롭게 되새긴 건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면서  “ㅇㅋ 또 시작이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계속 버티자” 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샤워와 함께 지저분한 몸을 닦아내면서 또 한 번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아직 사지 멀쩡하고 살아 있는 한 기회가 온다”. 근데 이게 몸과 마음이 지치니까 다짐이 좋게는 안 나와요. 앞에는 ㅅㅂ로  시작하는데 생략됐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실낱같이 얇은 희망이 끊어지는 일들이 무수히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숨이 붙어 있고 살아가고 있으니 희망은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휴휴 다행히도 지금은 더 이상 희망을 찾지 않습니다. 희망이야 있지만 아주 작은 불빛 하나에 매달려 있는 희망은 아니에요. 어느 부호들처럼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즐기고 싶은 거 즐기며 사는데 하나의 불편함도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저 많은 집들 중 우리 가족 몸을 맡길 만한 작은 공간 하나 없을까… 하던 시절에서 지금은 버젓이 부모님들 모시고 함께 살 수 있는 집도 있고

자전거로 또는 배낭 매고 장 보러 가던 시절에 비하면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다녀올 수 있는 차도 몇 대가 있고,

사이즈도 맞지 않는 옷 얻어 입던 시절에서 (근데 사실 얻어 입어도 나한테는 새로운 디자인이어서 동생과 다투면서 서로 입겠다고 할 정도로 그때는 엄청 기뻤음) 지금은 드레스룸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옷들이 있어요. 안 입어서 그렇지..

 

별건 아닌데 그냥 예전 시절을 추억하며 가슴속에 품었던 몇 개의 칼자루를 내려놓는 과정에서 저 말이 기억이나 몇 자 적어 봅니다. 모두들 할 수 있습니다. 뇌가 살아있고, 육체가 움직이는 한 끝난 게 아니에요. 용기를 가지시고 상황이 안 좋은 분들이 시라면 이 악물고 버티시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라요. 남은 하루 잘 마무리하시고, 내일도 기분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때는 미용실을 가는게 연 행사여서 틈틈히 동생이랑 서로 깍아주곤 했습니다. 아 물론 저희는 기술은 전혀없고 그냥 깍습니다. 어차피 머리는 또 자라니깐요. 조져놨는데 참 해맑네요.

 

복수는 아니지만 저도 동생을 깍아주죠. 모자이크 처리했는데 표정이 엄청 심각합니다. 이때가 동생 사춘기 정도 되는때라 외모에 한창 관심 가질 나이입니다만 저에게는 그를 만족 시킬 실력이 없죠.

 

 

별건 아니지만 롤렉스. 래퍼들 차는 몇억짜리 아닙니다 ㅎㅎㅎ 초침이 빨간게 너무 예뻐서 이직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샀습니다. 근데 안차요. 저돈 저때 테슬라 주식에 넣어놨으면 하는 후회가 밀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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