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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나

망막박리 수술했어요 - 미국 병원비

by EasyLife 2020.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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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국 와서 워낙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겪어서 이제 놀랍지도 않지만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을뻔하여 수술을 했었습니다. 벌써 몇 년 됐네요.

 

교과서 읽고 있는데 글씨가 잘 안보이길래 더 가까이서 읽고 하는 중에 안경이 너무 오래됐나 싶었습니다. 참고 참던 중에 가끔 욱신 거리기도 하고, 눈이 빨갛게 자주 충혈되고 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어머님께 말을 꺼냈죠. 안경 좀 바꿔야겠다고. 그렇게 해서 안경을 맞추러 Costco에 갔습니다. 멤버들에게는 할인이 된다는 강점이 있습죠.

 

검안사가 쭉 검안을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눈 잘 보이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안경 새로 맞추러 왔다 라고 했더니 잠시 이리로 와보라면서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바둑판이 그려져 있는 장은 종이를 내밀더니 이 바둑판들이 네모나게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뭔 소리여. 네모나니까 바둑판이지"라고 생각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한쪽 눈씩 번갈아 체크해보라고 하더군요. 까아아아암 짝 놀랬습니다. 왼쪽 눈으로 봤을 때는 네모난 것들이 오른쪽 눈으로 보니 네모칸들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사각형 모양은 아니게 보인다 했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길게 작은 글씨들이 줄을 맞춰서 쓰여있고 이것도 한번 보면서 Wavy 해 보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검안사분 표정이 훅 굳더니 방귀 뀌다가 은나 나온 만큼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 긴급상황이라고 당장 수술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니 뭔 소린지 설명을 해줘도 잘 모르겠고, 그 검안사분은 자기가 닥터랑 다 예약할 테니 주소 주는 곳으로 날짜에 맞춰서 무조건 가라 라고 했고 그렇게 저는 수술을 받게 되죠.

 

망막박리가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을 해줬었는데

1) 얼굴 쪽에 큰 충격이 와서 (권투, 축구 헤딩, 낙하 등등)이 망막이 떨어졌다.

2) 쬐매 난 구멍이 생겼는데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하지 않아 그게 원인이 되어 망막이 떨어졌다(구멍으로 피 수 분등 등이 들어가서 박리를 초래한다고 합니다)

 

내 눈!!!

 

3) 유전으로 얼굴이 앞 뒤로 길게 태어나서 망막이 약해 쉽게 떨어졌다

등등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시 얼마 전 친구 졸업식날 다른 그룹들과 약간의 마찰이 있어서 자그마한 싸움이 있었는데 그때 아구창을 맞은 게 원인이 되었나... 하는 의심이 있습니다.

 

증상은 눈에 번개 치듯이 번쩍번쩍 불빛이 생긴다던지, 모기 날아다니듯이 투명한 물체가 시선을 따라 떠 다닌다든지, 아니면 조그마 난 검은 블랙홀 같은 게 눈에 떠 다닌다던지, 더 심하면 점이 아니고 거의 커튼 처진 것처럼 시야의 한쪽 모퉁이가 아예 까맣게 보입니다. 

 

 

시야가 이렇다? 만사 제쳐두고 병원 가셔야 합니다. 이것도 이미 늦은거에요.

 

 

중요한 점은 이 증상들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 불편하지가 않아서 몰라요. 저도 몰랐고요. 눈에 뭐 떠다니고, 눈도 충혈되고, 그림자도 생겼던 것 같은데 그냥 피곤한가 보다 하지 매일 시야 체크하시는 분들 없잖아요? 그리고 어느 정도 심각하게 진행되기 전까지는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거 같아요.

 

 

그렇게 저는 비단장 수왕 선생님에게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아쉬움이 남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병원을 옮겨서 매년 정기검진 받았는데, 제 눈 검사하시는 닥터가 처음 보자마자 "오우... 내가 했었으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어디서 누구한테 했지?" 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왕 선생 ㅂㄷㅂㄷ...  닥터 왕 약력에 하버드라고 쓰여있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발음 하워드... 다른 학교였음.

 

수술 중에도 한번깻던 기억이 있네요. 처음에는 부분 마취로 진행하자 했다가, 수술 당일날 전신 마취로 갈 거다 이래서 두근두근. 그중에 한번 깼었던 기억이 있어요. 우아아앙악 하고 깼는데 주변에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마저도 수면 중에 꿈일 수도 있는데 모르겠어요 사실. 기억에는 분명 깻었는데..

 

수술이 끝나면 눈안에 가스를 넣어서 그게 떨어진 부위에 압력을 가해 붙게 하는 그런 형식인거 같은데요. 그래서 그런지 엎드려서 얼굴이 아래를 향하게 했습니다. 가스가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는데요 이게 진짜 곤욕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만 친구 씐쨍 이라는 친구가 어디서 마사지할 때 쓰는 침대를 구해다 줘서 거기에 코만 내놓고 한 달간은 엎드려서만 생활했습니다. 목이 너무 뻐근하고, 허리는 끊어질 거 같습니다. 추후에 우리 닥터 왕 선생님께서는 경과가 너무 좋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동시에 이제 좀 씻으라고 하는데 고개 숙이고 어떻게 씻냐..

 

 

그림을 보면 아마 저는 눈 완전 뒤쪽이 떨어졌었나 봅니다. 죙일 엎드려 있게 했거든요. 근데 우리 왕선생님이 나는 무슨 버클시술 이런거 한다고 했는데 눈안을 볼수도 없고 잘 모르겠습니다. 걍 대충 사는거죠 뭐.

 

 

 

그렇게 수술은 마무리가 되었고 시력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서 한쪽 눈은 거의 포기 상태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거는 완전한 실명은 면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관상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약간은 맹해 보일 수 있음). 최소한 눈동자는 양쪽 다 시선을 따라가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는 없어요.

 

 

 

현재 상태는

- 빛, 글씨의 존재 유무, 사람 형체, 색깔 등등을 구별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 글씨 읽기 불가능. 만약 이쪽 눈으로 읽고 싶으면 한 글자씩 초점을 맞춰서 읽어야 하는데 심심해서 해봤는데 한 줄 읽으면 뭔 내용 읽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 운전 불가능. 운전도 이쪽 눈으로만은 불가능합니다. 신호도 보이고, 차들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는데 거리 조절이 전혀 안돼요. 커브나 앞차 간격 이런 거가 안돼서 초상나기 딱 좋습니다

 

- 백내장. 부작용으로 백내장이 온다고 하네요. 저는 진행 중이긴 한데 어느 정도에서 지금 더 이상 진행이 없는 거 같다고 좀 더 지켜보자고 하더라고요. 굳이 많이 불편하지 않으면 일단은 내버려 두자는 게 제 의사의 의견입니다.

 

-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밤에 폰 하고 있을 때 왼쪽 눈 오른쪽 눈 빛깔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약간 다릅니다. 두 눈 다 뜨고 있으면 상관없는데 한쪽 눈씩 보면 확연히 달라요

 

- 렌즈. 눈알 크기가 더 작아져서 렌즈가 안 맞습니다. 양쪽 짝짝이로 맞추면 쓸 수 있는데 그냥 안경 씁니다.

 

- 행동 조심. 머리통에 뭐한대라도 맞으면 다시 떨어질 수 있다고 해서 조심조심히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18개월 된 딸내미가 자고 있으면 머리를 걷어차곤 하죠. 정기검진 받으러 가서 애기가 머리를 발로 찼다 좀 자세히 봐달라 그러면 와이프한테 맞은 거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며 검사를 시작합니다.

 

- 운전면허 갱신이 어렵다. 갱신하러 가면 양쪽 눈 시력 다 체크하는데 한쪽 눈은 안보이니까 자꾸 떨어뜨리려고 해요. 그래서 의사 소견서 가져가고, 운전을 10년을 했는데 사고 없이 하고 있다 라고 어필을 해서 갱신을 하곤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갱신할 수 있어서 개꿀이에요.

 

이 정도?로 추릴 수 있네요

 

 

 

 

 

 

그래서 얼마 냈냐고요? 4200만 원 냈습니다. 당시 보험도 없고 뭐 아무것도 비빌 곳이 없어서 병원비를 그냥 있는 그대로 때려 맞았는데 35,000불인가 나오더라고요. 예전에 안재욱 씨가 미국에 놀러 왔다가 맹장수술을 했는데 병원비가 4억인가 5억 나왔었다고 하는데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입원도 했어야 할 테고 개복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인 점은 병원에서 다달이 나누어 내게 허락해 줬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돈 없다고 배 째라고 하면 시간이 한참 흐르면 없애주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그 돈 메꿀려서 미국 병원비가 그렇게 높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없이 쪼들리던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 돈 다 내는데 진짜 한참 걸렸습니다.

 

지금도 제 동생은 만나면 제 눈을 가리키면서 "벤즈", 입을 가리키면서 "현대", 귀를 가리키면서 "혼다" 라며 놀리곤 합니다. 부위별로 차 한 대 값씩 들어갔다는 거예요. 망할 놈.

 

 

지금도 조심조심히 지내면서 일 년에 두세 번씩 체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바로 병원 예약해서 검사받고 있어요. 처음에 보험 생기고 병원 가서 체크받고 나올 때 살짝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있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편하게 검사받고, 이렇게 부담 없이 병원을 다니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저는 검사 한번 받을 때마다 '병원비 얼마 나오지....'라는 걱정에 한 달 전부터 잠을 못 이루곤 했었는데.. 혹여나 검사받는 중에 구멍이라도 하나 발견돼서 레이저로 지져야 하면 그날은 일단 한 달치 번 돈 날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오징어 볶듯이 지지고 시작하자고 합니다. 요번에 갔을 때도 왼쪽 눈에 작은 구멍 생겼는데 그냥 두고 지켜봐도 된다는데 지져 달라고 했어요. 구멍이 생기면 그 주변을 레이저도 태워서 더 커지지 않게 하는 시술을 합니다. 요번에 다녀온 거 $88 냈나 그래요. 

 

 

 

 

세줄 요약하자면

1. 망막박리는 여러 이유로 생길 수 있으니 증상을 꼭 숙지해두고 수상하면 바로 가자. 골든 타임을 지켜야 한다.

2. 미국 의료비와 의료 시스템은 전 세계 최악이다.

3. 미국에서 살면 안 아픈 게 돈 버는 거다 라는 명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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