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될 일이면 하지를 말고, 후회가 되면은 지금이라도 바꾸세요
저는 소심 소심쟁이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그 MBTI 인가? 그거 해보면 늘 결과가 배려 많고, 타인을 깊게 이해하고, 꼼꼼하고 디테일하고, 조용한 성격이며,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등등 그런 거 나오는데 그냥 한 단어로 정리해서 얘기하면 그냥 소심이에요. 소심 소심.
늘 생각 많고, 대비 많이 해놔야지 마음이 놓이고, 멍 때리면서 조용한 곳에서 생각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 북적북적거리는 거보다 한가한 곳이 좋고, 공상 좋아하고, 수수께끼나 추리 좋아하고, 클럽에서 시끄러운 음악 듣는 거보다는, 잔잔한 음악 나오는 선술집(?) 같은 곳에서 대화하는 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입니다.
근데 이게 웃긴데 더 어릴 적에는 지금 결과랑 정 반대였는데 이상하게 나이 먹으면서 변한 건지 뭔지, 결혼 전에 배우자랑 잘 맞는지 MBTI 테스트해주는 거 있는데 지금이랑 정 반대로 나왔습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데 아무래도 성향은 상황에 따라 좀 변하나 봐요. 어쨌든 지금은 제가 봐도 소심해짐이 분명합니다.
그. 런. 데
예전이든 지금이든 두 가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 "그때 그러지 말걸 괜히 해가지고...."
하는 후회하지 않으며,
"아 만약 이게 걸리면 나는 끝장인데..." / "제발 제발 제발 저거만 걸리지 말아라"
하는 운에 맡기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곳' 이 아니면 그곳에서 즐거운 '것'을 찾고, 지난 일을 후회하느니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집중하도록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습니다 by 부모님. 새로운 방법이 없거나 이미 일어난 일이어서 손쓸 도리가 없으면 그냥 깔끔하게 "어머? x 됐네? ^^" 라며 깔끔하게 포기를 하곤 했습죠.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은
우연찮게 지인들을 만나게 되거나, 오랜만에 연락이 돼서 만나는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보면은 가끔 (이라고 쓰고 자주) 대화 내내 후회하는 대화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듣고 있다가 보면 첨에는 딱하다가도, 나중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예전에 친구 A를 만낫을때입니다
친구 - 아..... 진짜 그때 공부 좀 할걸. 그럼 지금 이렇게 안 사는데
나 - 지금도 충분히 잘살고 있어. 돈 워리. 만약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미국에서는 나이 먹어서도 학교 돌아가시는 분들 많잖아 (저 대학교 다닐 때 클래스에 30-40대 분들도 틈틈이 계셨었습니다)
친구 - 지금은 안되지 일하랴 뭐하랴 바쁜데. 아오.. 그때 거기 가서 편입하고 졸업만 했으면 지금 이렇게 안 사는데.
나 - 지금 해도 돼. 분명 그때 했던 거보다는 머리도 굳고 해서 좀 더 고생스럽겠지만 충분히 할래면 할 수 있어
친구 - 지금은 안되지. 시간이 없어. 퇴근해서 밥 먹고 앉아서 티브이 좀 보면은 출근해야 돼서 잘 시간이야.
나 - 지금 우리 여기서 술 마시는 시간에 하면 되겠네. 빠르게 끝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롱텀으로 오래 가져가. 하다 보면 끝나 있어.
친구 - 술은 가끔 마시는 거잖아. 아 그때 내가 왜 안 했지. 그때 했었어야 되는데.
나 - (........... 이렇게 술 마시러 나오듯이 매일매일 이 시간에 수업 들으면 되겠네)
이 친구는 만날 때마다 저 얘기를 합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지금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는데 그게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주고 용기를 줘도 안 합니다. 주로 이유는 바쁘다. 할게 많다. 일이 너무 피곤하다. 등등인데 바쁘고, 할게 많고, 피곤한데도 술 마시러 나오라면 한 번을 거절을 안 하는 게 좀....
제 지인 중에 일하면서, 애 키우면서, 애 재우고 나면 밤늦게부터 공부하고 해서 학위 따신 분도 계셔요. 한분도 아니고 여러분이시고, 특히나 미국에서는 늦게 뭐 배우는 것도 충분히 용납되고 응원받습니다.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계속 후회만 하고 있어서 좀 답답해요.
또 다른 친구 B 와의 대화
B - 와.. 아이티를 했었어야 돼. 그때 내가 xx 교수님이 키워준다고 했을 때 IT로 바꿀걸 그랬어
나 - ㅇㅇ 나도 아이티가 이렇게 핫해질지 몰랐지. 지금도 원하면 직종 변경할 수 있어. 특히나 코딩이나 프로그래머는 일하면서도 배우고 하더라고
B - 다들 전공과목으로 졸업해서 취업에 도전하는데 직종 변경한다고 되겠냐. 할 거면 대학교때 했어야해. 아 그때 왜 안 바꿨을까.
나 - ㄴㄴ 직업 특성상 물론 전공이면 좋겠지만, 워낙에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경력직부터는 실력으로 평가돼서 충분히 가능해.
B - 아냐. 그래도 전공자들을 경쟁할 수가 없어. 학교에서 전공으로 하고 대학원을 가던지 좋은 학교로 편입했었어야 해. 아 진짜 그때 그 교수님 따라서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나 - 정말 해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해봐. 전혀 안 늦었어. 일하면서 살살살 공부 해봐. 적성에도 맞나 봐야 하니까
B - 지금 못해. 할 거면 그때 했었어야 돼. 진짜 후회된다. 그때 했으면 벌써 경력 xx 년 차에다가 연봉이 $$ 정도는 됐을 텐데
이 대화를 매년 볼 때마다 합니다. 처음 말했을 때 시작했으면 지금 벌써 취직해서 일 시작하고도 남았겠네...
참고로 이후에 다른 지인은 공부 시작하셔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틈틈이 공부고 해서 대학 학위 없이 프로그래머로 취직하셨습니다. 벌써 2-3년 차 되신 거 같은데, 위에 친구는 아직도 만나면 변한 거 없이 저 얘기만 해요. 그때 바꿨어야 한다고...
경제학 전공해서 일하다가 중간에 바꾼 사람도 있고 (보니까 두 명이나 되네요), 무역회사에서 일하다가 프로그래머 하겠다고 공부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1-2년 후면 취직했다고 연락 올 테고, 저 친구 B는 지금으로부터 또 1-2년 후에도 그때 바꿨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겠죠.
다른 지인 C 도 볼까요
C - 내가 그때 걔랑 계속 잘됬었으면 지금 이거 저거 다 하고 살고 있을 텐데 아 그때 왜 그랬을까.
나 - 있을 때 잘했어야지 인마 ㅋㅋㅋㅋ 잊어. 또 좋은 인연이 나타날 거야.
C - 걔 만한 애가 없어 지금 생각하면. 다른 애들이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나 - 어쩔 수 없지 뭐. 이제 와서 후회해서 뭐해. 다음 사랑에게 후회하지 않게 잘해줘
C - 아... 진짜 걔만 한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ㅋㅋㅋㅋ
나 - 그럼 다시 한번 연락해봐. 진지하게 사과하고 이러이러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 한번 더 기회를 줄 수 없겠냐 하고 물어봐라
C - 먼저 또 연락하기는 좀 그렇잖아
나 -..................????????????
얘는 이게 그리움인지, 아님 다른 사람 만나보니 오래된 전 여자 친구 만한 사람이 없는 건지 그때의 헤어짐을 후회하면서 새로운 인연도 다 놓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물론 이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가끔 지인들 중 후회에 휩싸여서 고민+고통+스트레스 겪고 계신 거 보면 안타깝다가도 속이 터질 거 같습니다. 괘씸 하달 까요? 후회는 되는데 그거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어.라는 마인드...?
"우리 아들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그래"처럼 그냥 스스로 위로하는 거 같아요. 마치 할 수 있지만 안 했으니 내가 못한 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풍기고 싶은 건지 어떤 건지
"그때 내가 걔랑 안 헤어졌으면 지금 뭐라도 됐어."
"그때 내가 학교 가는 걸로 선택만 했으면 지금 이렇게 안 있어."
"그때 전공만 잘 골랐어도 지금 날아다녔어"
이런 식으로 나는 할 수 있었지만 실수로 지금 미끄러져 있어 라고 설명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이 사람들 공통점을 보면 성을 지어도 한 채는 지었을 시간을 그냥 후회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한 솔루션이있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 그냥 후회하면서 시간 낭비만 하고 있어요. 모르죠. 뒤에서는 열심히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대화가 오래되면 나까지 좀 부정적인 기운이 확 싸고도는 기분이어서 얼른 대화 주제를 돌리곤 합니다.
후회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때때로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인 1은 대학교를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곳에 못 갔습니다. 이런저런 집안 사정도 있고, 성적도 그렇고 해서 그냥저냥 들어갔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사회에서 (특히나 한인들) 학교 이름으로 자기를 벌써 약간 "아~ 그 정도~ 레벨~" 하고 미리 판단하는 거 같아서 억울하고, 학교 좀 좋은 곳 갈걸 하고 후회가 되더래요. 그리고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학교에서 마지막 두 학기를 남겨놓고 있더라고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하느라 개인 시간이 없을 텐데 힘들지 않냐고 그러니까,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면 이제 인생에 있어서 평생 후회할 일 하나는 사라지네요. 1-2년 투자해서 평생 할 후회를 지울 수 있다면 투자 대비 훨씬 이득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소름 돋더라고요. 추워서.
지인 2는 타주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 보고, 그 문화를 겪어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결혼하고 그러면 어차피 이쪽에 정착해야 하는데 그전에 바쁜 동네에서 치열하게 살아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그러더니 몇 개월 있다가 이사 간다고 연락 왔습니다. 물론 몇 년 안 있다가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얼굴에 미련이나 후회는 없어 보였습니다. 돈 좀 모았냐? 그랬더니 돈 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ㅋㅋㅋㅋㅋ 먹고 마시고 하는 문화가 너무 잘 돼있어서 다 쓰고 오히려 신용카드 빚 좀 들고 왔다고 하는데 표정은 후련해 보이더라고요.
물론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후회든 열등감이든 어느 정도는 좋다고 생각해요. 상황에 따라 무시하지 못할 만큼 동기를 부여해주고, 어떻게 보면 삶의 활력소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만, 그로 인해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후회하느라 날리는 시간을 재투자하면 그 후회보다 더 큰일들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부디 후회 없는 하루 보내시고, 하루 잘 마무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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