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 야외 캠핑하러 가기로 했는데 이럴 거면 뭐하러 왔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고생이 감미된 종류의 여행/캠핑/휴가를 좋아라 합니다. 숙소보다는 텐트, 불도 좀 원시적으로 직접 피우고, 화장실도 숲 속에서 해결하고, 씻는 것도 계곡 같은 곳에서 하고 그런 로망 남자들은 다 있지 않나요?
잠시 삼천포로 - 대학교 때였나요? 제 포스팅에 종종 등장하면 ㅎㅋㅋ + 타이니 + 꺽정이 + 저, 이렇게 네 명이서 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아주 거친 캠핑을 가보자 해서 배낭에 있는 대로 다 쑤셔놓고 떠났습니다. 전쟁 시에 군인들이 어디서든 먹을 수 있게 준비된 음식들, 빗속에서도 불 필 수 있는 부싯돌, 어떤 물에 넣어도 마실수 있게 소독되는 물 정화 알약, 코넬 세트, 텐트, 우산, 막걸리 뭐 등등 다 챙겼어요. 하지만 물을 챙기지 않았다는 걸 몰랐죠.
그렇게 저희는 아무런 지식 없이 입산을 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경험이 없어서 손에 뭔가 바리바리 싸들었었거든요, 심지어 텐트도 옆가방 모양으로 접어서 들고 다녔습니다. 오르막길 되니까 죽겠더라고요. 체력이 빠지니까 손에 뭘 들면 계속 중심이 무너집니다. 등산하시는 분들 지팡이 왜 짚고 다니시는지 그제야 이해 가더라고요. 1박 2일 코스로 들어갔는데 길도 잃고 속도도 지연돼서 2박 3일에 하산했습니다. 첫날에는 텐트를 늪에 쳐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들 엠보싱 침대처럼 반쯤 묻혀있고, 물을 생수통으로 10개 챙겨서 갔는데 올라가는 중에 다 먹어서 막걸리로 수분을 채우면서 등산을 하질 않나. 내려와서 아버지 친구분께 등산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그러면 잘못하면 죽어!!" 라며 역정을 내시며 놀래시더라고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2박 3일간의 기록이 웬만한 영화 한 편이에요...
다시 돌아와서, 와이프는 저와 반대예요. 좀 편하고 릴랙스 하는 여행 좋아합니다. 음식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 준비되있는 호텔을 예약하든, 아니면 집안에서만 모든게 해결될 수 있는 집을 빌리든. 액티비티도 저는 카약을 타려고 하면 와이프는 배를 타고 싶어 하고, 제가 수영을 하고 싶어 하면 와이프는 플라밍고 튜브랑 그냥 떠있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불 피워서 바비큐를 해 먹는 게 재미이고, 와이프는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찾아 사 먹는 걸 좋아하죠.
어쨌든, 결혼하면 와이프랑 캠핑해보는 게 소원이어서 알랑 방귀를 뀌며 오랜 시간 설득한 끝에 결국 허락을 얻어 냈습니다. 근처에 있는 파크에 연락해서 캠핑장소를 예약했고 드디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와서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더랬죠.
들뜬 마음으로 하앍 하앍 캠핑장으로 떠났죠. 혹시나 가는 중간에 마음 바뀔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편의점도 들러서 이것저것 먹이고 필요한 것들도 사고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와이프에게 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경험시켜주고, 편안함과는 또 다른 거친 캠핑의 참 맛을 보여주고 싶었죠.
텐트 치는 일을 와이프에게 시켰습니다. 느껴봐라! 고생 시럽 지만 이것 또한 캠핑의 부분이다! 저는 꼭 그녀가 텐트 치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했습니다. 다 치고 나서 처음에 안으로 기어들어갈 때의 그 설렘. 캠핑 한 번에 딱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와이프한테 네가 쳐보라고 도와줄 테니 라고 했더니 별 불만 없이 쭉 치더라고요. 놀러 와서 기분이 좋나? 아니면 장소가 벌써 맘에 들었나? 뭔가 차곡차곡 잘 진행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 이번에 맘에 들어하면 앞으로 자주 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들어가자마자 바닥이 너무 딱딱하다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누워보라고 했더니 등이 결린다고 못 눕겠다고 하더군요. 슬슬 시동 거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편하게 앉을 수 있게 이불을 하나 깔아줬습니다.. 그랬더니 일단은 일단락되었고, 저는 이제 바비큐 해먹을 생각에 얼른 준비를 시작했죠. 분주하게 음식 준비하면서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넣었습니다. 어디 어디 파크인데 저녁에 와서 고기 먹으라고.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바쁘게 차에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뭐 옷하고 이런 거 챙기나 보다 하고 저도 나머지 짐들 세팅하고 음식을 불 피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녁에 올 테니 주소 뭐냐고 묻는 놈이 있었습니다... 주소를 뭐 어떻게 줘야 하니..? 위도/경도 좌표를 줘야 하나..)
한참 맥주 챙기고, 구워 먹을 고기 손질하고 불 피우면서 이제 저녁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와이프가 텐트 안에서 조용하더라고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날씨도 사실 좀 더워서 덥다거나, 날씨가 끈적하다거나, 땀난다, 샤워하고 싶다 등등 얘기가 나올 만도 한데 뭔가 수상했습니다. 벌써 적응했나...? 맘에 들어하는 건가....? 궁금해서 뭐 하고 있나 하고 살짝 가서 봤습니다.
그냥 조용히 바람 쐬고 있더라고요. 선풍기로요.. 손선풍기 아니고 집에 있는 선풍기입니다.
???? 뭐죠?????? 이럴 거면 뭐하러 온 거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거기서 오는 불편함을 겪으려고 그 안에서 찾는 행복. 그게 캠핑 아닌가요...............???
뭔가 제가 생각했던 캠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만 조용히 잘 있길래 일단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친구는 도착해서 고기 손질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열심히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고요. 나무가 울창해서 그런지 해도 빨리 져물더군요. 다행히도 불은 잘 피워졌고 고기도 준비되었고 이제 먹는 거만 남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놈 하나도 도착했습죠. 와서 조동아리에 넣기만 하면 되는 타이밍에 나타나더라고요. 먹을 복 있는 놈 같으니냐고...
그렇게 오랜만에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수다도 떨고, 재밌는 시간 보냈습니다. 집에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뭔가 자연에 둘러 쌓여 있으니까 일이나 다른 생각들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친구들이랑 밤새 수다 떨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텐트가 하나다 보니 친구들이 자고 갈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들과 작별 인사는 하고 있는데, 와이프 느님께서 텐트를 열고 나오셨습니다.
"우리 집 좋은 술 있는데 차라리 저희 집 가서 한잔씩들 하세요"
그래서 집에 와서 잤어요...
?
?
?
?
집에와서 친구들이랑 한잔씩 때리고 수다 떨다가 아주 푹 자고 다음날 다시 가서 텐트하고 짐 픽업해왔습니다. 이게 뭐죠 도대체?? 제가 살아왔던 삶에서는 없던, 겪어서는 안 되는 신개념 캠핑을 경험한 기분이었습니다.
캠핑에 가있던 시간보다 집에 있더니 더 길었던 거 같아요.... 참 그녀의 생각은 감히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집에 와서 편하게 쉰 거 같은 결과적으로 좋은 캠핑이었나 싶습니다. 더우니 선풍기도 쐬고, 불도 피워봤고, 고기도 구웠고, 친구들도 봤고, 술도 한잔씩 했고, 허리 안 아프게 집에서 잠도 숙면했고 뭔가 얻을 건 다 얻었지만 고생은 하지 않은 느낌..?
역시 와이프 느님 말 잘 들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날이었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 안전한 캠핑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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